총 게시물 309건, 최근 0 건
   

4월 10일 (주일설교) 우리 대신 고난 당하신 예수님

글쓴이 : 미디어팀 날짜 : 2022-04-22 (금) 23:20 조회 : 122
우리 대신 고난 당하신 예수님 (사 53:1-6)

1.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약 700년 전에 활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남왕국이나 북왕국이나 모두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있던 때 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2. 그런데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겠다고 하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외쳤습니다.
-처음에는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게 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포로들이 돌아오고 이스라엘이 회복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3. 무엇을 보여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결국은 모두 회복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한지 2,500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은 기적 같이 다시 온 세계가 인정하는 독립 국가가 되었습니다.

4.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렇게 정치적으로 구원 해 주겠다고 말씀하시던 중에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영적인 구원은 이스라엘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적인 구원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 되는 것이었습니다.

5. 뿐만 아니라, 정치적은 구원은 정치적으로 해결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구원은 정치적으로 해결 할 수가 없습니다.
-군사적으로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구원은 영적으로만 해결 할 수 있습니다.

6.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인 구원자로 보내 주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그 사실을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7. 그래서 본문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먼저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 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2)
-우리가 그림으로 보는 예수는 아주 멋지게 보이지만 사실은 곱지도 않고, 풍채도 없고, 첫 눈에 호감이 가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마른 땅에 나온 줄기 같이 약해 보여서 무슨 큰일을 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8. 그래서 3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3)
-“간고를 많이 겪고 질고를 아는 자”라는 말은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은 자”라는 말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들떠 보지도 않을 만큼 멸시와 무시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9. 그런데 4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4)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우리가 겪어야 할 고난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대신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이 무엇인가 크게 잘못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10. 그래서 5절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것은 우리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1. 그래서 6절에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우리가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받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정작 심판을 받아야 할 우리는 심판을 면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12. 그런데 그런 이사야의 예언은 700년이 지난 후에 실재로 일어났습니다.
(1) 예수님께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2) 그리고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까지 아무도 예수님이 죄인들의 구원자라는 것을 모를 만큼 평범하게 사셨습니다.
(3) 그리고 드디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많은 멸시와 무시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멸시하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권세로 귀신을 쫓아 내셨는데 종교 지도자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예수님을 무시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4)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13.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한 그대로 오셨고,
-예언한 그대로 고난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고난으로 인해 죄인들은 그들이 지은 죄로 인한 심판을 피하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4.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보고 그냥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하여 고난 받고 희생 당하셨다는 것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의 희생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롬 5:8)

15.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믿음은 예수님의 희생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1) 성숙한 믿음은 예수님의 희생을 가능하게 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2) 그래서 성숙한 믿음은 예수님의 희생을 인해서도 감사하지만,
-그보다 더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16.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하여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그런데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은 그것을 사랑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엄마/아빠는 자기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자기들도 부모가 되고 나면 그 때에는 부모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자기들을 위한 부모의 희생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나면 그 때부터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합니다.

17.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도 그와 비슷합니다.
(1) 예수님의 희생을 그냥 희생으로만 보고 감사 할 수 있습니다.
(2) 나 대신 심판을 받으신 일로 인해 충분히 감사 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으로 인해 죄 용서를 받게 되었고,
-구원 받아 천국영생을 누리게 된 일로 인하여 얼마든지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그런 놀라운 희생을 치르셨다면 나 역시 예수님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18. 그러나 예수님의 희생을 가능하게 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영혼 깊이 깨닫게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나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몸짓이 됩니다.

19. 예수님의 희생을 그냥 희생으로만 볼 때에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그만큼 해 주셨으니,
-나도 예수님을 위해 이만큼은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예배도, 기도도, 봉사도,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은 율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
-무슨 말입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깊이 깨달아야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 주셨는데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삶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1) 현실이 너무 어렵습니다.
(2)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앞을 가로 막습니다.
(3)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22.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십자가를 보면 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23. 그래서 사도 요한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24. 그러므로 이번 고난절을 통하여 십자가를 바라보십시다.
-단순한 희생의 십자가가 아니라 사랑의 십자가를 보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는 이상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1) 사탄마귀는 세상의 어려움을 보라면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합니다.
(2) 그러나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25.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 사랑의 증거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예수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려운 세상을 이기게 되기를 축원합니다.